조선의 최초 미라 '장희빈'의 무덤 증언
1970년 시절 도로공사때문에 장희빈 무덤을 지금의 서오릉 내로 이전해야 해서 인부들이 동원된 적이 있었다.
오랜 세월 쌓인 흙을 걷어내고 회곽이 나왔다.
줄을 매달라 관을 들어내는데 한 일꾼의 실수로 관뚜껑이 열리고 말았다.
사실 이전까지 계획엔 아무것도 해체하지 않고 바로 관만 이동시킬 예정이었는데 그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른 비단 재질의 옷에 쌓여있던 시신이 하나도 부패되지 않은 것이다. 즉 미라가 돼서 살아생전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학계에서는 곽을 둘러싼석회 때문이란과학적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 현상을 직접 본 사람들은 장희빈이 얼마나 한이 서렸으면 그랬을까.. 하며 무덤을 옮기고 간단한 제를 올려줬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7대 세조부터 석실 형태에서 백총들 부담 줄인 다고 회곽묘 형 태로 바꾸고 쭉 유지했는데 회곽묘 형태가 완전 밀봉, 진공, 방수가 되었다고 한다.